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닌의 난 (문단 편집) === 다이묘 가문들의 후계자 다툼 === 한편, 오닌의 난을 부른 또다른 원인은 유력 다이묘 가문들의 후계자 다툼이었다. 쇼군의 후계자 문제도 있었지만, 다이묘의 집안에서도 상속 문제가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하타케야마(畠山) 가문의 상속 다툼. 그런데, 다이묘의 집안의 상속이 결정되면 쇼군이 그것을 승인하는 것이 무로마치 시대의 룰이었는데, 그 승인권을 가진 요시마사가 이쪽으로 기울고 저쪽으로 기울고 했다. 이 때문에 쇼군에 대한 신뢰감이 무너졌다. 하타케야마 가문에서도 쇼군과 비슷한 문제가 생겨났다. 하타케야마 모치쿠니(畠山持国)는 아들이 없자 동생 모치토요(持富)를 양자로 들였지만, 몇 년 뒤에 친아들이 태어나자 양자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을 취소하고 친아들인 하타케야마 요시나리(畠山義就)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쇼군 요시마사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하타케야마 가문의 유력 가신인 진보(神保) 씨 등이 이를 납득하지 않고 모치토요의 아들인[* 모치토요는 이미 사망] 하타케야마 미사부로(畠山弥三郞)를 후계자로 지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454년]], 모치쿠니는 가신 진보 쿠니무네(神保国宗)를 주살했다. 이리되자 미사부로는 동생과 함께 호소카와 카츠모토(細川勝元)와 야마나 소젠(山名宗全; 山名持豊)에게 도망쳤다. 카츠모토와 소젠은 미사부로를 지지했기 때문에 되려 상황이 역전되어 미사부로파가 모치쿠니를 습격했고 모치쿠니는 도망쳐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요시나리도 도망쳤고 요시마사는 미사부로를 하타케야마 가문의 후계자로 인정했는데… 요시마사의 변덕이 일을 더 키웠다. 요시마사는 미사부로를 지지한 하타케야마의 가신들을 처형하라는[* 사실 주군에게 반기를 든 셈이긴 하지만.] 명령을 내렸고 호소카와 카츠모토가 이를 받아들이자 야마나 소젠은 여기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쇼군에게 반기를 든 탓에 빡친 요시마사가 소젠을 체포하라고 명령했지만, 카츠모토가 열심히 말린 덕에 사면되어 소젠이 타지마로 내려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로 인해 미사부로는 다시금 후계자 자리에서 쫓겨났고 요시나리가 하타케야마 가문을 접수했다. 이 난리통에 모치쿠니가 [[1455년]] 사망하고, 요시나리가 정식으로 하타케야마 가문을 계승하게 되었다. 요시나리는 눈엣가시같은 미사부로 세력을 제거하려고 들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는데, 요시나리는 쇼군인 요시마사에게 '''보고도 안 한 채로 미사부로를 공격하는 게 쇼군의 지시'''라고 구라를 쳐버렸고(!),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던 요시마사가 빡치는 건 당연한 일. 이로 인해 요시나리는 쇼군의 신임을 잃어버렸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요시나리는 호소카와 카츠모토의 영지인 기즈를 공격했다. 이로 인해 카츠모토는 빡쳐서 미사부로의 편을 들어서 요시나리를 추방해버리려고 계획했다. 반면 야마나 소젠은 요시나리와 친밀해졌다. [[1459년]], 미사부로가 사면되고 [[교토]]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그만 병으로 죽고 만다. 카츠모토와 미사부로의 가신들은 미사부로의 동생 마사나가(政長)를 옹립하게 된다. [[1460년]] 요시마사는 다시 이번에는 마사나가를 하타케야마 가문의 후계자라고 인정하는 바람에~~오락가락~~ 요시나리는 추방되었고, 하타케야마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2년여 간 내전이 벌어졌다. 이외에도 [[토가시]](富樫), 오가사와라(小笠原), 롯카쿠(六角) 등의 가문에서 가문 내 분쟁이 일어났는데 막부라도 나서서 이걸 잘 조정했다면 몰라도 오락가락하고 일관성없는 행보를 보인 것이 결국 오닌의 난의 발발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후계 계승 문제와 관련해 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에는 당시 일본에서 상속 제도의 변화가 일어난 것과 관련이 있었다. 가마쿠라 시대까지만 해도 기본적으로 상속은 균분 상속으로 딱히 한 명에게 가문을 몰빵시켜주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에서는 대가 내려갈수록 각각의 가문은 점차 세분화되어 약화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 시대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점차 한 명에게 상속을 집중시켜서 가문을 유지하려는 형태로 상속 제도가 바뀌어갔다. 이 경우 딱히 장자에게만 상속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상속받게 되면 나머지 형제들은 상속자의 가신이 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이렇게 되다 보니 적자로 상속을 받지 못하면 실로 쩌리나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더구나 이러한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한 것은 상속을 경쟁하는 형제들이 각각 자신들만의 가신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속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본인이 쿨하게 양보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